조선인들만 부정하겠지만

일제시대 35년은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기간입니다.


일한병합은 조선과 일본이 국제법에 의거해

서로의 동의를 얻어 평화적으로 합방한 합법적인 조약입니다.

열등한 조선인들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이라도 한 줄 아는데

침략전쟁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일제 35년 기간동안 제대로 된 반일시위라 해봤자

고작 초기 강압적 통치와 차별에 저항한 3.1 폭동과

6월 학생폭동의 단 2건에 불과했습니다.


즉 역사의 진실은 조선왕이 일본천황에게 조선백성과 조선반도를

자발적으로 비싼 값에 팔아 먹었다는 것입니다.


간혹 의병타령 하시는 짐승같은 조선인들이 있는데..

이 부류들은 말이 좋아서 의병이라고 하는거지

사실, 조선왕에게 그들은 역적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또 동학농민 폭동도 사실상 항일집단이 아니라, 반조선 봉기 혁명군이었고,

의병을 진압하고, 동학농민군을 학살한 자는 다름아닌 조선관군이었습니다.


동학당을 잡고 다녔던 사람 중에 조선인들도 잘 아시는 안중근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 팔아먹고 일제시대 내내 편하게 살았던

그 조선왕은 불쌍한 놈으로서 동정을 받으면서도,


정작 차별받고, 괄시받던 조선의 백성들은 생존을 위해,

그리고 출세를 위해 친일 한 것을 무슨 반민족행위라며 헛소리로 욕하는걸 보면

조선인들이 얼마나 벌레같은 존재들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 조선인들은 조선계 일본인이었습니다.

그들의 조국은 일본이었지, 조선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징병제 실시 이전에 조선인 지원병은 언제나 모집인원을 훨씬 넘긴 수치였습니다.

그 수가 무려 60만명에 육박하는데,


현재도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들은 강제징용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 취업이민이 대다수이며, 일제시대에 조선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본군에 입대하고

일본기업에 취업해 가난을 극복하고, 출세를 하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총독부나 그 관련 기관에 근무 한 조선인 수가 17만명이나 되는데.. 일제시대에 그들이 조선인들에게 비난을 받았을 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저축은행, 식산은행.. 등에 취직이라도 할 것 같으면

같은 조선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동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배우자로서 최고 조건을 갖췄던 것입니다.

그리고 황군에 입대해 장교라도 될 거 같으면 고향마을에선 마을의 자랑이라며 성대히 잔치가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지나사변), 태평양전쟁과 같이 일본이 수행한 전쟁에서 황군이 승리를 할 때마다 조선인들은 환호를 보내며 일본 황군을 응원했습니다.


당시 대다수의 조선인들에게 일본군은 조선을 중국의 속국으로부터 해방시킨 해방군이었으며 러시아 백인종의 마수로부터 동양의 평화를 지킨 평화군이었으며, 만주국을 건설한 관동군은 고구려의 고토를 회복시킨 고구려군의 후예라고 생각됐습니다.


또한 당시의 조선인들은 태평양 전쟁을 대동아 성전이라 여기며 황군을 미제국주의 침략 괴수로부터 조선과 동양의 평화를 수호하는 정의로운 군대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때문에... 황군의 승리를 조선의 승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계기는 일본의 조선경영이 단순한 수탈정책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일제는 조선인들을 무작정 탄압하며 수탈만을 자행던 것이 아니라

조선인들을 대일본제국의 일원으로 받아주고, 그 일환으로 창씨개명과 혼혈정책과 같은 동화정책을 펼쳤습니다.


때문에 당시 조선인 남성들은 일본여성들의 아랫도리를 후리고 다닐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대한제국의 황태자였던 영친왕의 경우도 당시 일본제국의 황족이었던 이방자 여사와 결혼을 했습니다.


이 결혼에 대해 고종과 장지연은 진정으로 일본과 조선이 하나되는 영예로운 혼인이라며 축복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통의 조선인 평민들 또한 일본여성들과 로멘스를 즐겼는데, 세계사에 피정복국가에 여자를 제공하는 나라는 일본제국이 유일합니다.


서양제국주의 국가들이 혈통의 순수성을 위해 내지인과 식민지인의 혼혈을 적극막았다는 사실을 볼 떄, 일본의 대조선 정책은 그러한 전형적인 식민지 정책과는 근본 뿌리부터 달랐다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또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법적 분쟁이 발생하였을때똑같이 일본법의 적용을 받았기 때문에 일본인이 조선인을 살해하거나 여자를 강간시.. 똑같이 처벌받았습니다. 조선인이 일본여성을 강간한다든지, 혹은 일본인이 조선 여성을 강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오히려 일제는 경제적, 법적으로 상대적 약자였던 조선인 범죄자에게 민족융화차원에서 더욱 관대함을 보였습니다.


만약 일제가 합방초기부터 이후시기까지 차별과 탄압을 더욱 강화했다라면.... 조선인의 독립운동사가 그렇게까지 미미한 수준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해서라도 전민중이 혈전을 벌여 독립을 하려고 애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과 차별은 한일합방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강도가 약해져 갑니다. 조선인에게 일본인의 이름을 갖게 하여 두민족간의 구분을 없애려는 창씨개명, 진정한 내선일체를 위한 혼혈정책.... 이들 모두가 일제가 조선을 우대했다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수많은 협력자가 양산되었으며, 독립운동가들은 민중적 지지를 얻지도 못하고, 해외에서 끼니를 걱정하며 외로운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안습존재로 전락했던 것입니다.